눈이 부시게
어느 하루도 눈부시지 않은 날은 없습니다
"어느 하루도 눈부시지 않은 날은 없습니다."
이 짧은 한 줄의 문장이 이토록 긴 여운을 남길 줄 몰랐습니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는 단순한 시간여행의 소재를 넘어, 인생 그 자체를 관조하는 작품입니다. 가족, 사랑, 노년, 그리고 삶과 죽음.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너무도 따뜻하게, 또 유쾌하게 풀어낸 이 드라마는 제 마음에 아주 오랫동안 남을 것 같습니다.
처음 이 드라마를 접했을 때는 솔직히 흔한 판타지 로맨스물이라 생각했습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얻은 혜자(한지민 분)의 이야기, 그리고 그와 엮이는 준하(남주혁 분)의 미스터리한 서사. 하지만 회가 거듭될수록 이야기는 예상을 완전히 빗나갑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시간”보다 “삶”에 집중하게 되고,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의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워줍니다.
이 작품이 정말 놀라운 건, 바로 김혜자 배우님의 열연과 더불어 그녀의 ‘내레이션’입니다. 드라마의 후반부, 모든 반전이 드러난 뒤에 들려오는 김혜자 님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 한 편의 시(詩)였습니다. 단순히 극의 결말을 설명하는 것이 아닌, 시청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따뜻하게 다독여주는 그 내레이션은 지금도 마음속에 남아 떠나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겐 그저 평범한 하루가, 다른 누군가에겐 간절히 바랐던 하루입니다.”
“하루하루를 허투루 살지 마세요.”
그동안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당연하게 여겨왔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일, 따뜻한 밥을 먹는 일, 가족과 눈을 맞추고 웃는 일. 하지만 혜자의 이야기를 통해, 그리고 치매를 앓고 있는 ‘노년의 혜자’가 과거를 기억해내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귀한지를 알게 됩니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계획 의도는 단순명료합니다. 삶은 눈부시다. 그 누구의 인생도 허무하지 않으며, 매 순간은 찬란하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끝을 향해 간다는 게 아니라, 또 다른 빛을 품는다는 것. 이처럼 담백하지만 깊이 있는 메시지를 코미디와 휴먼 드라마의 형식 속에 녹여낸 점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가족 간의 오해와 화해, 늙어가는 부모와 자식의 시선, 그리고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노인의 삶까지. 모든 이야기가 하나로 연결되며,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고 또 깨닫게 합니다. 특히 마지막 회에서 아버지(안내상 분)와의 장면은 저에게도 가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든 대목이었습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저는 참 많이 웃었고, 그만큼 많이 울었습니다. 김혜자님의 마지막 내레이션은 마치 누군가 제게 직접 이야기해 주는 것처럼 느껴졌고, 특히 아래 구절은 지금도 종종 떠올립니다.
“지금 이 순간도 살고 있음이 기적입니다. 눈이 부시게, 그렇게 살아내세요.”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요. 드라마가 끝난 뒤에도 이 말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지금’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며, 우리의 하루하루가 얼마나 값진지 다시금 깨닫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눈이 부시게는 단지 잘 만든 드라마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의 위로였고, 선물이었습니다. 지친 일상 속에서 따뜻한 온기를 건네는, 인생이라는 긴 여정을 함께 응원해 주는 친구 같은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