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연모》
함부로 품어선 안 될 간절한 그 마음
KBS2 드라마 《연모》는 2021년 방영된 작품으로,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가상역사 로맨스로 주목받았습니다. 단순한 사극 로맨스에 그치지 않고, '쌍둥이'라는 금기와 정치적 음모, 신분제 사회 속에서 피어난 절절한 사랑과 정체성의 고뇌를 섬세하게 담아내며 시청자들에게 진한 여운을 남겼습니다.
《연모》는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며,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쌍둥이 오빠를 대신해 왕위에 오르는 이휘(박은빈 분)의 삶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여자가 왕이 될 수 없다'는 절대적 규율이 지배하는 조선에서, 이휘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철저히 남자처럼 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가슴 깊이 간직한 '한 사람을 향한 연모'는 점점 그녀를 흔들게 합니다.
'함부로 품어선 안 될 마음' – 금지된 사랑의 무게
드라마의 중심에는 ‘연모(戀慕)’, 즉 누구에게 연정을 품는다는 행위 자체가 가진 무게가 있습니다. 사랑은 인간에게 있어 가장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감정임에도, 특정한 사회적 틀 안에서는 때때로 가장 위험하고 금기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이휘가 품은 마음은 단순히 ‘왕이 사랑에 빠졌다’는 수준을 넘어섭니다. 그녀는 ‘여자’로서 사랑을 품는 것이 아니라, ‘왕’이라는 절대 권력의 상징이자 ‘남자’의 신분을 갖춘 존재로 그 마음을 숨겨야 했습니다. 사랑을 해도 티 낼 수 없고, 오히려 사랑한다는 이유로 정체가 드러날까 두려워하는 모습은 시청자들의 가슴을 저미게 했습니다.
결국 이 드라마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시대와 신분, 성별, 권력 등 앞에서 얼마나 작아질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놓지 않는 인간의 위대함도 함께 그려냅니다.
쌍둥이라는 이유로 벌어지는 비극
《연모》에서 가장 중요한 장치 중 하나는 바로 ‘쌍둥이’ 설정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쌍둥이를 불길하게 여겼고, 특히 왕실에서 쌍둥이는 권력다툼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기피되었습니다. 이휘는 쌍둥이 남매로 태어났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숨겨져야 했습니다. 반면 오빠는 왕위 계승자로 자라나지만, 비극적인 사건으로 목숨을 잃게 되고, 그 자리를 이휘가 대신하게 됩니다.
쌍둥이라는 설정은 단순히 극적 장치가 아닌, 운명과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같은 시간에 같은 부모에게 태어났음에도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운명이 완전히 달라지는 모습은 당시 사회의 억압과 불평등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휘가 오빠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은 '내가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정체성의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이 드라마는 쌍둥이라는 설정을 통해 한 인물의 이중적인 삶, 겉과 속이 다른 정체성의 괴리감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인간 내면의 갈등을 드러냅니다.
가상역사 로맨스의 매력
《연모》는 철저하게 사실에 기반한 정통 사극이 아닌, ‘가상역사 로맨스’라는 점에서도 흥미롭습니다. 실존하지 않는 인물과 상황을 통해 현실의 제약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롭고 창의적인 이야기를 펼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특히 박은빈 배우는 실제로 남장 여자를 연기하면서, 남성성과 여성성 사이의 미묘한 감정선을 훌륭하게 표현해 내며 ‘왕 이휘’라는 인물을 설득력 있게 완성했습니다. 로운 배우가 맡은 정지운 또한, 권력의 중심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복잡한 심리를 사실적으로 보여주며 극에 몰입감을 더했습니다.
이처럼 《연모》는 허구의 공간 안에서, 현실보다 더 진실한 감정과 인간의 모습을 그리며 '가상역사 로맨스'라는 장르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연모》는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깊이 있는 메시지는,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감추어야 했던 존재성과, 그 속에서 피어난 진짜 자아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쌍둥이라는 설정은 단지 극적 장치가 아니라, 억압적 사회구조 속에서 한 개인이 어떻게 자아를 감추고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강렬한 메타포입니다. 《연모》는 조선이라는 배경 속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그 사랑은, 감히 품어서는 안 되었을까?
그 질문에 답하는 건 결국, 시대가 아니라 사람 자신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