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드라마 〈나의 해피엔드〉

by 이웃집 캐스퍼 2025. 6. 26.

드라마 〈나의 해피엔드〉 포스터

 

드라마 〈나의 해피엔드〉

휴먼, 추리, 미스터리, 범죄, 느와르, 공포, 스릴러, 피카레스크, 복수 — 이 모든 장르가 한 여자의 붕괴와 복수를 따라 뒤엉킨다.

두고 봐. 이 지옥, 당신들도 똑같이 느끼게 해 줄게.”

그녀의 입에서 터져 나온 이 말은 단순한 복수의 서약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을 믿었고, 가족을 지켰고,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신의를 지켜온 한 인간이 완전히 무너진 끝에서 외치는 인간 본성에 대한 절규이자 선언이다.

드라마 〈나의 해피엔드〉는 성공한 커리어우먼이자 완벽한 가정을 꾸리고 있던 ‘서이선’이라는 여성의 삶이 산산이 조각나며 시작된다. 누구보다도 모범적인 삶을 살았던 그녀가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의 외도, 친구의 배신, 가족의 외면 속에 고립되고, 모든 것을 잃고 붕괴되는 과정은 한 편의 심리 스릴러처럼 서서히 조여 온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단순한 몰락의 서사가 아니다. 그것은 복수로 진화하는 인간의 감정, 그 안에서 피어나는 기이한 생존 본능을 그리고 있다.

현실과 허구의 모호한 경계

〈나의 해피엔드〉는 현실적인 인간 심리 묘사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복수극의 전형적인 서사와 미스터리 스릴러의 요소를 조화롭게 엮는다. 처음엔 휴먼 드라마처럼 보이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추리물과 느와르, 스릴러적 분위기로 전환된다. 친구와 남편의 관계, 사라진 과거의 진실, 그녀를 지켜보는 정체불명의 인물들은 극의 몰입도를 끌어올리며 관객을 불신과 의심 속으로 끌어들인다.

특히 서이선의 감정 변화는 공포영화의 심리 묘사처럼 극대화된다. 환각, 불면, 망상, 고립 등 심리적 압박이 시청자에게도 전달되며, 그녀의 분노와 결심은 점차 ‘복수’라는 피카레스크 서사의 중심축으로 돌입하게 된다.

 "행복한 결말 따위 없어, 누군가는 대가를 치러야지"

이 드라마는 제목인 ‘해피엔드’를 끊임없이 반문한다. 과연 누구의 해피엔드인가? 주인공은 묻는다. 내 삶은 누군가의 성공을 위한 조연이었고, 내 사랑은 누군가의 욕망을 위한 도구였다. 그 모든 허상을 걷어내고 그녀는 행복했던 삶의 껍데기를 스스로 불태운다. 이제 그녀에게 해피엔드란, 단지 정의가 실현되고 죄가 처벌받는 결말이 아닌, 고통을 되갚는 정의 구현의 서사가 되어버린다.

“지옥은 나 혼자만 겪지 않아도 돼”

“두고 봐. 이 지옥, 당신들도 똑같이 느끼게 해 줄게.”
이 문장은 복수극의 전형적인 다짐처럼 보이지만, 이 드라마에선 ‘지옥’을 나누겠다는 반反영웅의 윤리적 모순을 드러낸다. 서이선은 더 이상 선한 인물이 아니다. 그녀는 법이 벌하지 못한 사람들을 향해, 세상이 외면한 정의를 향해 직접 칼을 들고 응징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그녀 또한 파괴되어 가며, 이 드라마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 악과 선의 모호함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피카레스크의 여성화

"착한 여자는 끝났다"

서이선의 복수는 단순한 감정 폭발이 아니다. 그것은 철저하게 기획되고 치밀하게 실행된다. 감정적 분노를 넘어선 그녀의 복수는 느와르 장르 속 안티히어로의 성격을 가진다. 하지만 기존의 남성 중심 피카레스크와는 달리, 여성 서사 속에서 그것이 얼마나 다른 의미를 갖는가를 보여준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으로 싸우지 않는다. 이름조차 잃어버린 채, 자신을 망가뜨린 세상의 시스템에 맞서기 위해 이름 없는 괴물이 되기로 결심한다.

 ‘나의 해피엔드’란 이름의 지옥, 혹은 자유

드라마 〈나의 해피엔드〉는 시청자에게 묻는다.
당신이 만약 모든 것을 잃었다면, 그때도 여전히 ‘착하게’ 살 수 있겠느냐고.

서이선은 그 질문에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답한다. 이 드라마는 복수의 통쾌함보다도, 복수를 향한 한 인간의 파괴와 그 감정의 복잡성을 섬세하게 풀어낸다. 피카레스크 복수극과 미스터리 스릴러의 복합장르로 구성된 이 작품은 단순히 “나쁜 놈들 혼내주는 드라마”가 아니라, 무너진 한 인간이 어떻게 괴물로 재탄생하는지를 관찰하게 만든다.

그리고 끝내 이렇게 묻는다.
“당신이라면, 이 지옥에서 해피엔드를 꿈꿀 수 있나요?”